류경호텔
북한의 마천루 (미완공 마천루)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김일성이었을 적에 북한의 조선로동당 정부가 평양시에 건설을 시작했던 101층짜리 미 완공 마천루이다.
63빌딩에 대적하려고 만든 체제 선전용 겸 김일성의 치적용 건물이며, 명목상 건설 목적은 이름과 같이 호텔 건설이다. 분명 명목상 용도가 호텔이지만 단 한 번도 호텔로 쓰인 바가 없다. 왜냐하면 1987년 8월 28일 첫 삽을 뜬 이래 36년 째 완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 마천루를 짓기 시작했을 때, 마침 김일성 시기 최악의 3대 실책의 효과가 여실히 드러나기 시작했었고, 이 건물의 윤곽이 잡혔을 때 고난의 행군을 겪게 되었다. 결국 경제난으로 인하여 오랜 시간 건설이 중지되었으며, 결국 2011년 김정은이 집권하고 나서야 건설을 재개하여 겨우 외장 단장까지 마쳤다. 외장 단장을 겨우 마쳤을 무렵, 시공 책임사인 이집트의 오리스콤 그룹이 이집트 혁명으로 모든 사업 동력을 상실함으로서 다시 건설이 중지되었고, 이후 북한에 대한 신용도 문제로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받지 못하여 건설이 중단된 상태로 남아있다.
이렇듯 민족적 망신과 같은 건물이지만 특이한 외관으로 외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북한 건물이다. 외국의 개인/기업 등의 언론 매체에서 북한을 소개할 때, 김일성-김정일 동상과 함께 북한의 랜드마크마냥 출현한다. 덕분에 분명히 건설 자체는 자금 낭비지만, 류경호텔 건물이 전광판마냥 북한(평양)을 상징하는 건물이 되어버려서 북한 정권이 원하던 대로 자신들을 선전하는 데에는 제 몫을 다하고 있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건물로 '가장 높은 빈 건물'(Tallest building unoccupied)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세월이 지나면서 결국 골딘 파이낸스 117에게 뺏겼다.
한국에서는 북한의 경제난이 해소되는 양상을 보여서 완공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뻔 했으나, 코로나 사태에 북한 당국이 덤으로 이 기회에 시장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고자 한때 무역을 전년대비 99% 이상 차단할 정도로 초현실적인 경제 운영을 한 탓에 북한의 경제가 파탄 수준에 이르게 되는 바람에 2023년 현재에는 완공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 건물은 평양시 보통강구역 서장언덕에 있으며, 근처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중앙계급교양관, 류경정주영체육관, 봉화병원, 서장회관 등의 시설물이 있다.
건설의 역사
역대 건설사 및 운영 계획사 | 건설 시작일 | 건설 중단일 |
백두산 건설&기술 | 1987년 8월 28일 | 1990년 12월 |
화재투자유한공사 | 1990년 8월 22일 | 1992년경 |
코리아랜드 | 1994년 12월 27일 | 1998년 |
오라스콤 | 2008년 1월 | 2012년 7월 |
켐핀스키 | 2012년 11월 | 2014년 4월 |
그야말로 아직 완공도 안 했는데 30여 년 동안 여러 회사들을 거쳐갔다.
대한민국이 급격한 경제 성장을 거두던 1980년대에 그나마 남은 경제력이 있었던 북한은 한국에 지지 않기 위한 체제 경쟁에 몰두해 있었다. 한국은 경제 성장과 더불어 1988 서울 올림픽 개회 확정 이후 외교적으로도 세계적인 영향력이 급속히 증대했고, 북한 역시 제3세계 외교에 더욱 공들이며 동시에 아웅산 테러 등으로 지속적으로 한국의 국제적 지위에 위협을 가해 왔다.
내부적으로도 북한은 서울의 신라호텔을 보고 일본에서 원자재를 수입해서 평양에 고려호텔(45층/143m/1985년 8월 9일 완공)을 건축했고, 서울의 서울종합운동장을 보고 평양에 릉라도 5월 1일 경기장(1989년 5월 1일 완공)을 건축했다. 또한 주체사상탑, 평양 개선문 등 다양한 대형 건축물들이 건축된 것도 이 때의 일이었다.
그러다가 1984년에 대한민국의 63빌딩을 보고 김정일이 체제 경쟁으로 건설 지시를 내렸다. 지금에야 이보다 훨씬 층고가 높은 건물들이 많지만, 당시만 해도 63빌딩은 당초 일본 도쿄에 있던,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선샤인 60(240m)를 9.6m 정도 제치고 아시아 최고층 건물에 올라섰다(지붕 높이 249.6m, 안테나 높이 274m). 이 때문에 아마 김정일이 '100층짜리 호텔 건물'을 지으라 지시를 내린 것으로 풀이된다.
프랑스 시공회사의 설계와 기술 및 자본을 기반으로 1987년 8월 28일 착공했다. 계획 당시에는 1989년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맞춰 개관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후 완공 일정이 연기되어 1992년 4월 15일 김일성의 80세 생일에 완공되는 것으로 계획이 연기되었다.
하지만 공사에는 매년 4억 달러 이상의 외화와 연간 10,000여 명의 인원이 투입되어 북한의 국가 재정에 커다란 부담을 줬다. 이에 북한이 더 이상 버틸 수가 없다면서 얘네들 하는 게 그렇듯 공사 대금을 체불했다. 1989년 외부 골조 공사가 완료되었으나, 북한이 자금난으로 내부 인테리어를 위한 자재를 수입하지 못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다. 공사 중단은 북한의 자금난이 주 원인이었지만 공법 자체에도 큰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 북한이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까지 완공할 것을 목표로 잡아 무리하게 공사를 진행했고, 때문에 콘크리트가 굳기도 전에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다가 골조에 균열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정부의 공사대금 체불이 계속되자 1989년 5월 프랑스 측은 일부 직원만 남기고 북한에서 철수했고 건설 공사는 중단되고 말았다. 이후 프랑스 측은 북한의 계약 이행을 촉구했으나 북한은 계속 배째라 식으로 버텼고, 결국 1990년 12월 프랑스 측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북한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1989년 건설이 중단된 후 2008년까지 근 20년 가까이 공사가 진척되지 않은 채 방치되었다. 1990년 중순 북한 정부는 류경호텔의 남은 건설 자재들을 김일성 탄생 80주년을 기념하여 평양 시내에 조성할 예정이었던 살림집 20,000호 가량의 건설로 돌렸다.
1990년 8월 22일 북한 정부 책임자는 마카오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마카오의 홍콩계 카지노 회사인 화재투자유한공사의 투자로 공사가 계속 진행될 것이라 밝혔다. 이후 소리소문도 없이 무산되었다. 류경호텔의 카지노 사업권을 둘러싸고 북한 정부와의 의견 차로 무산된 것이라는 추측이 있었다.
공사가 중단되어 방치되어 있는 동안에도 북한 정부는 계속해서 외국에 이 건물의 건축 재개를 타진하기도 했다. 1992년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대몬 달린 기자의 기사에서, 북한은 류경호텔을 비롯한 북한 내 개발을 위해 서방 자본의 투자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4년~98년에는 국내 부동산회사인 코리아랜드(사장 강영수)라는 회사가 북한 정부와 류경호텔 분양대행권 계약을 정식으로 체결했다고 주장하면서 류경호텔의 구조물에는 문제가 없으며 조만간 중국 회사가 공사를 재개할 것이라 홍보하기도 했다.
그러다 1996년 5월 중국 기술진이 평양을 방문하여 류경호텔을 점검했는데, 상층부에 누수가 심각하고 콘크리트가 부식되어 붕괴 위험이 높아 폭파공법으로 건물을 해체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북한 당국은 체제의 상징이라면서 철거를 거절했다고 한다. 1996년 9월에는 북한 정부가 대우그룹에 류경호텔 공사 재개를 타진해 오기도 했다. 하지만 대우는 당시 붕괴설이 나돌고 있던 류경호텔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당시 북한을 방문했던 외부 인사들에 따르면 너무 오랫동안 건축이 진행되지 않은 결과 지반이 30cm 정도 내려앉고 외벽이 떨어져나가고 있었다고 한다.
1996년 9월 독일의 시사주간 슈테른지(Stern)의 페터 한네스 레만 기자가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와 작성한 기사에서 "평양의 류경호텔은 공사가 중단됐으나 철거할 경우 체면이 손상될 것을 고려, 현 상태로 방치돼 있다."라고 서술되어 있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을 방문한 유럽상공회의소 소속 마커스 놀랜드(Marcus Noland) 박사는 "이 건물은 수리가 불가능하다. 콘크리트의 강도가 부실할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샤프트도 기울어진 상태이다."라는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즉 건물이 한쪽으로 기울어진 상태, 부등침하(不等沈下)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1989년 공사가 중단된 이후부터 2008년 외장 공사가 재개될 때까지 근 20년간 저런 모습으로 방치되었다. 사진만 보면 전형적인 폐건물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야말로 콘크리트 뼈대만 앙상한 모습이라 공포스런 분위기까지 풍긴다.
2003년 애니 하청 일을 하느라 1년 동안 평양에서 지낸 캐나다 애니메이터 기 들릴은 이 짓다 만 건물의 흉물스러운 광경을 보고 공포감까지 느꼈다고 한다. 당시 일정을 만화로 그린 평양은 2004년에도 문학세계사에서 번역, 출판했다. 이 만화책에서도 북한의 고층 빌딩은 죄다 텅텅 비어있는데, 그 중에서도 이 건물은 더욱 을씨년스런 흉물이라고 류경호텔을 평했다. 저게 뭐냐는 질문에 북한에서 알고 지내게 된 지인들도 "아, 저거요..." 이러면서 말을 흐렸다고.
2003년 10월 8일 대한민국 언론사 한겨레신문은 류경호텔 공사가 재개된다고 발표했고, 이틀 후 복수의 중국 언론 매체에서도 같은 내용이 보도되었다. 이후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2006년경 북한의 홍보 자료에서 류경호텔이 자취를 감추었고, 평양 시내 사진에서도 류경호텔이 지워졌다고 한다. 주인에 의한 존재의 부정 2연타
오랫동안 국외에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공사 중단 건물" 등으로 불리면서 명성 아닌 명성을 떨치게 되자, 2008년 김정일의 지시로 노동당 39호실이 나서게 되었다. 김일성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2012년까지 류경호텔을 완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2008년 5월 중국 언론은 류경호텔 공사가 재개되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의 재벌 통신사 오라스콤 그룹이 북한의 이통통신 사업권을 따내는 대가로 류경호텔에 투자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오라스콤 외에도 홍콩과 아랍 에미리트도 북한의 광산 개발권을 가져가는 대가로 건축 자금을 지원했다. 이 외에 프랑스의 시멘트 생산 업체 라파즈도 투자했다.
2008년 9월 북한을 방문한 기자에 따르면 아직까지 외관상 공사가 재개된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고 보도되었으나, 2008년 11월 24일 류경호텔의 유리창 공사가 드디어 재개되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류경호텔의 유리창 공사가 재개된 지 약 한 달 후인 2008년 12월 중순, 류경호텔의 건설 자금을 댄 이집트의 오라스콤 텔레콤에 의해 북한에서 휴대폰이 처음으로 개통되었다. 며칠 후 오라스콤사가 북한의 이통 통신권뿐만 아니라 은행 영업권도 얻어내어 북한에서 '오라은행'이 개업했다고 보도되었다.
2009년 10월 이집트 오라스콤 텔레콤 회장이 북한 정부로부터 '친선훈장 제1급'을 수여받았다. 훈장을 수여하면서 북한 정부는 류경호텔이 김일성 주석 탄생 100주년에 맞추어 개장될 것이라 밝혔다. 2010년 초반에 유리 설치 공사가 완료되었다.
2011년 2월 17일에는 외장 공사가 거의 끝났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하지만 2011년 2월 발생한 2011 이집트 혁명으로 인해 오라스콤 회장이 국외로 피신해버렸기에 공사의 앞날이 캄캄하게 변해버렸었다. 게다가 재건축 전에 엄격하게 실시되어야 하는 안전 감리가 허술하게 진행됐다는 주장도 있다. 유리창 공사 중 사상자가 여럿 발생했다고 한다.
2011년 7월 외장 공사가 완료되었다.
외장 공사만 끝난 거지 내부까지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아래는 2012년 촬영된 호텔 최상층의 전망대가 들어설 공간인데, 내장 공사가 되어있지 않아 황량한 모습이다.
2011년 11월 연합뉴스는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 4월에 맞춰 25층까지만 내부공사를 완료해서 우선 개장할 예정이라고 보도했으나, 실현되지는 못했다.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은 김일성 탄생 100주년은 고사하고 류경호텔 완공을 보지 못한 채 결국 먼저 죽었다.
2012년 1월, 미국 CNN 계열 여행정보 사이트 CNNgo는 류경호텔을 세계에서 가장 추한 건물 1위로 선정했다.
완공 예정일인 김일성 탄생 100주년인 2012년 4월이 되었지만 류경호텔은 아무런 소식이 없다. 북한 언론들은 이 건물 대신 창전거리에 짓고 있던 대규모 고층 아파트 단지와 인민극장 같은 다른 건축물들을 부각시켰고, 이들 건축물들은 김일성의 생일에 맞추어 개장했다.
2012년 7월, 류경호텔 건설을 하던 이집트 오라스콤 그룹이 류경호텔 사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북한 정부와 계약 파기에 최종 합의했다.
2012년 11월 초, 평양 체류 중에 몰래 류경호텔에 들어갔다 나온 영국인 기자의 증언에 따르면 내부는 위의 사진들처럼 아무것도 없이 시멘트 미로처럼 방치되어 있다고 한다. 호텔 안에 있는 건 건설 인부도 아니고 자동소총을 든 군인이었다고 한다.
2012년 11월, 독일의 호텔 체인인 켐핀스키가 류경호텔 사업자 계약을 체결해 2013년에 개장할 예정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캠핀스키 레토 비트버(Reto Wittwer) 회장은 "평양 관광사업을 독점할 수 있다. 북한이 개방만 하면 류경호텔은 현금 인쇄기처럼 돈을 벌어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3월, 켐핀스키 호텔그룹은 북한 정부와 사업 계획에 대한 이견으로 류경호텔 개장을 무기한 보류했다.
이후 2014년 4월, 켐핀스키 그룹은 류경호텔 운영 계획을 철회하고 류경호텔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환구시보에 따르면 캠핀스키그룹은 2013년 7~8월 쯤 류경호텔을 직접 개장해 운영할 예정이었지만,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자 북한 호텔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결정했다. 캠핀스키 측은 "현 상황에서 캠핀스키 기준에 맞게 류경호텔을 관리할 방법이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틈만 나면 대남 도발을 하는데 어느 국가, 어느 기업이 북한에 들어가 사업을 할거냐고"고 말했다.
2017년 8월 류경호텔의 외장 추가 공사가 완료되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하지만 언제 내부 공사가 마무리될지는 알 수 없으며, 시멘트 골조 상태로 너무 오랜 기간 방치돼 있어 건물 구조가 안전할지는 미지수라고 지적했다.
2018년 4월, 김일성의 생일을 며칠 앞두고 건물에 조명이 들어왔다. 2018년 6월에 찍힌 영상을 보면, 건물 전면에 LED를 도배했다.
심지어 야간 조명조차 고장이 나서 도시미관을 해치는 경우가 있다.
2023년, 완공 예정일로부터 30년이나 초과 되었음에도 외부만 완공되었을 뿐 내부 공사는 하나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사실상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인데, 차라리 헐고 똑같이 다시 짓는 게 훨씬 낫긴 하지만 그러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 북한도 류경호텔에는 완전히 손을 놓은 상황이라 류경호텔을 호텔로 정비하여 개장할 계획이 없고, 외관 과시용으로만 사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후술하듯 대외 선전에서 류경호텔을 찬양하는 것도 사실상 포기한 상황이다.
참고로 이 건물을 공사하는 사이에 김일성이 사망하고 이제는 사망 30주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거기다 건설 지시를 내린 김정일도 2011년 사망해 현재 사망 12주기를 찍은 상태다. 류경호텔이 첫 삽을 뜬 이후 대한민국에선 전두환 - 노태우 - 김영삼 - 김대중 - 노무현 - 이명박 - 박근혜 - 문재인 - 윤석열 순으로 대통령이 8번이나 바뀌었는데도 아직도 완공이 이뤄지지 못했다.
이름(명칭)
'류경(柳京)'이라는 이름은 옛날에 평양을 부르던 다른 이름이다.
북한 내에서는 백공오(105) 호텔이라고 부른다는 소리가 있긴 하지만, 공식 명칭은 엄연히 류경호텔이다. '호텔'도 북한에서 쓰는 말이다. 시공은 105호 돌격대가 참여하였고 설계는 평양도시설계연구소, 백두산건축연구원이 참여하여 제작하였다고 한다. 층이 105층인 이유가 돌격대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105호텔이라는 말을 쓴다면 아마 건설을 맡은 돌격대 내부에서 쓰는 별칭 정도일 것이다. 근위 서울류경수제105땅끄사단과는 다른 것 같다. 아니면 아마 대한민국에서 63빌딩의 명칭에서 와전된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예전에 나왔던 다른 설로는 김정일이 5살 때 "자라면 100층짜리 건물을 짓겠다"고 했기 때문에 당시 김정일의 나이인 5+100이 되어 105층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류경호텔을 만들면서 평양 지하철에 역이 추가되어 있는데, 그 이름하여 건설역이다. 이 '건설역'의 부역명이 다름아닌 류경호텔이다. 저 건설은 한자가 '建設', 영어로 하면 Construction으로, 우리가 아는 그 건설이란 용어 맞다.
규모
규모는 총면적 435,000m²에 연면적 400,000m², 높이 330m, 하단부 건축폭 160m. 총 객실 수는 3,400개. 이 외에 기상관측소 및 TV 중계실 등 오늘날의 고급 호텔과 비슷한 고급 시설도 건설될 계획이었다.
향산호텔, 량강호텔, 고려호텔, 량각도국제호텔에도 회전 레스토랑이 설치되어 있듯이 여기에도 회전 레스토랑을 설치했는데 무려 5개나 된다고 한다.
당초 완공 계획은 김일성의 80세 생일을 딱 맞춘 1992년이었으므로 만일 완공되었으면 아시아에서 최초로 100층을 넘긴 빌딩이 되었을 수도 있다. 물론 사전에 돈을 충분히 준비해서 공사했더라도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게 완공하려면 층을 올릴 때마다 콘크리트가 어느 정도 굳고 나서 층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목표 시점인 1992년에까지 맞추지는 못했을 것이다. 물론 그게 비용으로나 인명 중시 관점에서 보나 늦더라도 그렇게 공사하는 것이 훨씬 낫지만.
건축 구조적인 고찰
보통 현대에 지어지는 초고층 마천루들, 특히 100층을 넘나드는 건물 같은 경우에는 일반 아파트처럼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철골조이거나 혼합형으로 건립하는 게 보통이다. 이유는 다름아닌 효율성.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할 시 가용 면적이 매우 좁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건립 비용은 느는데 실질적인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 또한 철근 콘크리트조는 다른 공법에 비해 공기가 길어지는 편이라 건축비가 급격히 상승하는 초고층 빌딩 건축에는 부적절하다. 간단히 보면 서울 송파구에 건설된 롯데월드타워가 철근 콘크리트+철골 혼합형이며 아웃리거 구조에 벨트트러스를 적용하였다.
그러나 류경호텔은 21세기에 지어지는 초고층 건물들과는 다르게 고강도 콘크리트 같은 것도 아닌 고층 건물에는 부적합한 일반 콘크리트를 부어넣었다. 그래서 류경호텔은 그야말로 돈을 벌 수 없고 쓰기만 하는 105층짜리 콘크리트 덩어리일 가능성이 높다. 객실 공간도 크기에 비하면 부족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평양에 여행객이 많은 것도 아니라서, 만일 개장한다 해도 텅텅 빌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전부를 오피스 타워로 개조하기는 더더욱 힘들 터.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북한의 만성적인 전력난으로 인해 초고층까지 완공 후 개방을 한다 하더라도 저 거대한 건물에 전력 수급이 원활하게 될지도 미지수이다. 즉, (북한 주장으로) 101층짜리 건물의 최상층을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하나 제대로 동작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전에 엘리베이터 샤프트가 휜 문제가 해결됐는지조차 불분명하지만.
평가
2017년 11월 24일, 영국의 일간지 더 가디언이 전 세계의 여러 건축물 중 많은 비용이 투입됐지만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애물단지 건축물 시리즈의 '흰 코끼리(White elephant)'로 류경호텔을 선정하였다. "1987년 공사를 시작했으나 아직도 손님을 받을 여건이 준비 되지 않은 곳이며, 7월까지도 거의 비어있고, 외관 작업은 마무리가 되지 않았으며, 그러나 10월 북한 여행객들의 건의로 곧 열린다는 추측이 크다고 설명하며, 류경호텔은 20년 후에나 보라(Watch this space in another 20 years)"라며 설명을 끝마쳤다.
2021년 12월 25일, 영국의 일간지 데일리메일은 전세계의 최악의 하얀 코끼리 건축물 1위로 류경호텔을 선정하였다. 105층 이상의 건물인데 텅텅 비어있는 곳은 류경호텔이 유일하며,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북한에 있다는 이유였다.
류경호텔 건설이 얼마나 허튼짓이었는지 자신들의 건설 성과물을 자화자찬하는 북한조차 류경호텔에 대해 언급하더라도 류경호텔 외벽에 붙은 LED 야경 정도만 언급하지 류경호텔이라는 건축물과 그 건설 과정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 정도다. 다시 말해, 천리마동상, 주체사상탑, 평양 개선문 같은 선전용 건축물을 넘어 류경호텔 못지않은 허튼짓이었던 서해갑문도 온갖 자화자찬을 해대는 북한이 류경호텔에 대해서는 '기적'이라고 말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실상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자화자찬 성향이면 100층이 넘는 류경호텔의 건설도 서해갑문 건설 이상의 미사여구와 건설 과정마다 "김일성이 ~하도록 했다"는 식의 에피소드를 덧붙여 자화자찬할 게 안 봐도 뻔한데 류경호텔의 건설을 찬양하는 선전을 아예 안 한다는 것을 보면 북한도 류경호텔은 감추고 싶은 나라망신 수준의 일이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류경호텔이 그 무슨 선전용의 "수도장식"이 아니라는것은 공사를 오래동안 미루어온것만으로도 얼마든지 알수 있습니다. (중략) 많은 자금을 들여 완공하여보았자 관광업에 리용할수 없고 인민이 혜택을 볼수 없으니 외세와 추종세력의 온갖 비방과 날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차분하게 시기를 기다려온것이 아니겠습니까?
2012년 1월 25일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온 글 《류경호텔의 비약을 바라며》 중.
다만 2012년 우리민족끼리에 남한 시인이 중국에서 쓴 글이랍시고 올라온 글에는 "류경호텔이 수도 장식용 건물이라는 말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대한 '왜곡'을 목적으로 하는 외세와 추종세력의 '악선전'" "류경호텔의 '성공'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자주국방에 의거하여 벌인 자주외교의 성공이며 동시에 미국의 대조선경제제재의 실패"라는 해괴한 주장을 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으나, 이 글을 제외하면 북한의 대외 선전에서도 류경호텔을 찬양하는 일은 없다시피하다. 심지어 북한의 실태를 터무니없이 미화하는 것으로 악명 높은 자주시보(구 자주민보), 민족통신을 위시한 종북주의자들의 주장 중에서도 류경호텔을 미화, 찬양하는 내용은 찾을 수 없을 정도라고 하면 말 다한 셈이다. 북한이 UFO를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집단마저 옹호를 포기할 정도면...
기타
이곳에 할당된 IP의 주소는 175.45.176.0/22이다.
미국의 기타리스트 폴 길버트의 3집 앨범 <Fuzz Universe>의 재킷 사진에 외장 공사가 끝나지 않은 모습의 류경호텔이 그려져 있다.
창작물에서
서구에서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진리부(MINITRUE, The Ministry of Truth)의 건물과 오버랩 되는 모양이다. 1984의 배경은 완벽히 통제되는 국가이며, 그 핵심인 진리부 건물은 작중에서 "흰 콘크리트로 지었고 번쩍이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층마다 계단식으로 쌓아 올린 채 300미터나 하늘 높이 솟았다"라고 서술되어 있는데, 세부적인 면은 좀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북한의 현실과 류경호텔의 모양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서구에서 류경호텔을 소개하는 기사 등에서는 현실의 진리부 건물이라는 식으로 비유하는 경우가 많다.
20세기 소년의 친구당(友民党) 건물은 류경호텔과 디자인이 유사성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2 군단의 심장에 등장하는 멩스크의 황궁의 디자인은 이 류경호텔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한국 대체역사소설 '경애하는 수령동지'에서 김정일을 암살하고 호위총국 병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88 올림픽 개막식 날에 맞춰 폭파되어 붕괴한다.
페이스북 게임인 심시티 더 소셜에서는 적대 관계의 최종 단계 건물로 등장한다. 이른바 '궁극의 고통의 요새(Fortress of Ultimate Woe).' 가격은 명성(Fame) 2500.
모바일 게임 '에어포트 시티'에서는 호텔 건물 중 하나로 등장.
배틀필드 4 DLC 드래곤즈 티스의 프로파간다 맵에서 실루엣만 등장한다. 만약 플레이어블 맵이었으면 상하이 봉쇄 맵의 마천루처럼 무너졌을 것이다. 아깝다
윤민혁의 밀리터리 소설 2차 한국전쟁에서는 국군의 북진 중에 폭격 당한다. 주인공 권경준은 저건 통일 후 쓸 만할 텐데 굳이 폭격한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는데, 상기한 문제점을 고려하면 전쟁 난 김에(?) 처리하는 게 나을지도.
벨라루스의 밴드 몰찻 도마의 EP <С Крыш Наших Домов>의 커버로 사용되었다.
SCP 재단에서는 SCP-031과 SCP-1427의 격리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사랑의 불시착의 포스터에 사용되었다.